티스토리 뷰

영화 군함도가 누적 관객수 650만명을 돌파 했습니다. 

뒷 힘이 조금 달리는 듯 보이지만 단순 조선인 징용의 문제 만이 아닌 원폭으로 인한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우리가 진실을 꼭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 입니다.

 
여전히 생존해 있는 2,500명이나 되는 조선인 원폭 피해자들….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원폭 피해자가 많은 국가 라는 것을 아십니까?


"
원자폭탄을 맞은 조선인, 그들은 모국어로 울었고, 모국어로 신음했다. 아파서 하는 신음을 일본어로는 '이따이'라고 한다.
일본인들은 이따이 이따이 하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나 조선인들은 아이고 아이고 하며 신음했고, 어머니 어머니 부르며 울부짖었다.
그렇게 소리치며 한사람씩 죽어갔다.
일본인 구호대는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어머니 하고 울부짖는 조선인들을 결코 병원으로 옮겨주지 않았다.
조선말을 하는 그들에게는 물도, 먹을것도 주지 않았다.
방공호에서조차 내쫓겼다.....
8월의 찌는 듯한 태양 아래서 그렇게 버려진 채 썩어가는 조선인들의 시신에 새카맣게 까마귀들이 모여들었다.....조선인들은 주검에서까지 차별 받았다.
"
--소설 '군함도' 본문중에서




1945년 8월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원폭으로 인한 사망자는 두 지역을 합쳐 15~25만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 중 나가사키에서만 조선인 2만여명이 피폭되고 1만여명이 사망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강제 징용되어 군함도의 광부로, 미츠비씨 조선소의 인부들로 가혹한 노동에 처해졌다가 본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원자폭탄에 의해 희생된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비극을 생생하게 그린 작가 한수산의 소설 '군함도를 먼저 살펴 보겠습니다. 작년에 출간되었고 이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 ‘군함도’가 제작 되었습니다.

27년에 걸친 취재와 집필, 전면 개정의 과정에서 한수산 작가는 소설의 무대가 되는 군함도와 나가사키에만 십여 차례 방문하고 일본전역을 비롯해 원폭 실험장소인 미국 캘리포니아 네바다주까지 다녀왔으며, 수많은 관련자를 인터뷰하는 등 치밀한 현장 취재를 거쳤습니다.
단순 징용의 문제가 아닌 조선인 피폭의 참상의 이 작품 속에 생생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군함도의 탄생

일본 나가사키에서 남서로 20여 km 떨어진 곳에 있던 무인도 하시마....
1810년 부근의 어민이 섬의 표면에 노출된 석탄층을 발견했고, 1890년 전범기업 미쓰비시사 소유자에게 10만엔을 주고 탄광을 구입하게 되면서 하시마섬(군함도)는 일본 제죽주의 근대화의 축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양질의 석탄이 나오자 미쓰비시는 일본 최초의 10층 규모의 아파트는 물론 극장, 종교시설, 학교, 유치원, 체육관까지 세우고 석탄 채굴에 열을 올렸습니다.
이때부터 마치 군함이 떠 있는 모습이라하여 군함도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사진: 초기 하시마섬(군함도)의 일본인 거주지 모습. 영화관, 학교, 9층 주택 등 기반 시설이 갖춰진 계획도시였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북쪽 끝의 좁은 목조건물에서 더위, 벌레, 병과 싸우며 살아야 했다. [세계문화유산? 군함도의 진실] / ⓒ omura-highschool.net)




한때 5천명 이상이 거주 하고 있었고 전성기에는 ha당 835명이라는 세계 최대의 인구밀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들에게 그곳은 지옥섬이 라고 불려졌습니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고 석탄 수요가 급증하자 일본은 군함도의 해저탄광에 조선인 600여명을 강제로 끌고와 노역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인 광부들이 가지 않는 지하 700미터의 해저탄광에서 징용 조선인들은 하루에 오로지 주먹밥 1개만 먹으며 30도의 고열을 견디며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옆으로 누워 12시간동안 석탄을 캤습니다.


(영화 '군함도' 속 해저탄광 갱도의 모습)


"
벽에는 '석탄 한덩어리는 피 한방울', '석탄 없이는 병기 없다', 라고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표어가 시커멓게 석탄가루를 뒤집어 쓴 채 붙어 있었다. 탄차를 타기 위해 지상은 묵묵히 앞서 걸었다.
오전 작업이 끝났을때 지상은 초주검이 되어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땀에 젖은 얼굴이 번들거렸다. 눈알만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노루마 한 통분의 작업이 끝났을대, 부풀어 올랐던 손바닥의 물집이 터지면서 살갗이 벗겨져 나갔다. 빨갛게 드러나 살갗이 쓰라려서 곡괭이를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
- 소설 ‘군함도’ 본문중에서



더 큰 문제는 원폭 피해속의 일본의 차별

군함도에서 다쳐서 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을 기다린 것은 일본 패전을 알리는 나가사키 원폭 투하....

전체 사상자 15만명 중 조선인 피폭자는 2만명에 달했고, 그 중 1만명이 사망했으며, 사경을 헤매며 신음하던 조선인 피폭자들은 구호를 받지 못한 채 차별 속에 죽어갔습니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군함도의 원폭 이후 생존자들을 일본은 다시 도시를 청소해야 한다며 나가사키로 끌려간 것입니다.
나가사키는 미국의 원폭으로 3만 명이 즉사하고 7만 명이 후유증으로 죽은 곳입니다. 인구의 45%가 원폭의 사상자가 된 방사능의 도시를 정비하기 위해 군함도의 생존자들이 투입된 것입니다. 



군함도의 작가 한수산은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묻는 의미가 우선 진행되어야 하지만 미국의 원폭투하는 교전국 국민만이 아닌 강제 연행 되어 일본에 와 있던 조선인 민간인에 대한 살상이었음도 역시 인식되어야 한다고 주장 합니다.

또한 생존하고 있는 원폭피해자들과 피폭 2세의 열악한 건강상태와 사회적 소외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은 군함도의 이러한 진실을 외면한채  '메이지일본 산업혁명유산'이라며 하시마섬을 유네스코에 등재했습니다.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대상을 1868년부터 1912년까지의 메이지시대에 국한해서 등재한 것도, 이러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는 꼼수가 아닌가 의심됩니다. 그러고도 일본은 지금 140억 원 이상의 관광수익을 챙기고 있습니다.


어제를 기억하는 자만이 내일이 희망이다.

한국이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원폭 피해자가 많은 나라 입니다.
소설 군함도를 읽으며, 군함도 영화를 보며 우리의 아픈 역사를 다시 한번 기억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쉐어앤케어에서도 원폭 피해를 입으신 1세대, 2세대 피해자들을 위해 더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있는 일을 준비해 보겠습니다.


댓글
댓글쓰기 폼